"오늘 간만에 다같이 술한잔 하시죠." 동기들의 단톡방에 누군가 운을 띄운다. 약속 시간만을 정할 뿐 누구도 어디에서 만나자는 말은 없다. 약속 시간이 되어 우리는 각각의 장소에서, 한 공간에 모이게 된다.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는 늘 함께 술을 마시던 당시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만난 시간도 어느새 8년. 코로나 상황의 순기능일까. 8년이나 함께한 우리였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몰랐다면, 혹은 마주하지 않는 상황을 만남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면, 우린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같이'에서 '각자'로 변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코로나에 대한 이유로 서로를 눈 앞에 두고 만나는 일을 지양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당연하게도 술 한잔 마시자는 약속에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오랜만에'라는 말 뒤에 이러쿵 저러쿵 이유를 붙여가며 영상통화로 만남을 떼우는 사람은 없었다. "술 한잔 마시자"에 담긴 의미는 서로를 앞에 두고 만나자는 것이지 술만을 위한 만남을 갖자는 것이 아니니까.
각자의 삶이 오래 지속된 결과, 우리는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누군가를 앞에 두지 않고 만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술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영상을 통해서, 또는 목소리를 통해서 한 공간에 있을 수 있음을 배운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장소에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한 공간에 모였다. 옆에 있는 상대와 술잔을 부딪히고, 장난을 치며 대화를 나눈다. 늘 그렇듯 생산적인 대화는 아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별다른 일은 없는지 물으며 시답잖은 말들을 쏟아낸다. 새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어떤 삶에 놓여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삶을 살고 있는지 파악한다.
누군가의 취업을 축하하는 자리에도, 누군가의 고민을 털어놓는 자리에도, 각자의 미래를 걱정하는 자리에도 우리는 같이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늘 한 공간에 만나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함께 있음을 느꼈으니까.
멀리 있으니까, 바쁘니까, 코로나 때문에 등의 이유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꼭 피부를 맞대고 앉아야 같이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각자의 장소에서 한 공간에 있음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한 번쯤은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지금 이 글을 보며 떠오른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한 번 운을 띄워보라. "오랜만에 술한잔 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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