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기 지인들과 아주 적은 인원으로 소모임을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 요가를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매주 주말 지인의 공간에서 서로의 삐걱거리는 자세를 함께 고쳐가며 요가를 했다. 요가를 가르쳐주던 강사님이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 않았고, 여러 상황이 발생해 모임이 지속되지 못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줌을 켰다. 처음엔 다들 어색했다. 카메라 각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천장이 보이는 화면, 반쯤 잘린 얼굴, 요가 매트가 비좁아 발이 화면 밖으로 나가는 장면들. 자세를 취하다 화면에 엉덩이만 나온 경우도 있었고, 그걸 본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리면 연쇄적으로 자세가 무너졌다. 진지하게 시작했지만 늘 어딘가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어색함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웃는 그 순간이 오프라인에서 느끼던 연대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면이 끊기면 "야, 너 멈췄어!" 하고 누군가 소리쳤고, 마지막 이완 자세에서 다 같이 조용해지면 괜히 뭉클했다. 같은 공간에 없었지만, 같은 호흡 안에 있었다.
코로나는 우리를 흩어놓았지만, 연결을 끊지는 못했다. 화면 속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함께였다. 삐걱거리는 자세도, 터지는 웃음도, 마지막의 고요함도 — 그것이 우리가 그 시간을 버텨온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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