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 차 미디어 교육 강사지만, 대학원 진학으로 잠시 강의를 쉬게 되었다. 해마다 자유학기제 등을 통해 여러 학교에서 미디어 강의를 진행했었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되면서, 아이들의 얼굴을 반 밖에 볼 수 없게 되었다. 감염병은 예방되었지만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표정’이었다. 강의는 교육자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강사는 수강생들의 표정을 보고 수업을 ‘소통’한다. 아이들이 지루해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너무 빠르게 말하고 있지 않은지, 조금만 노력해서 보면 학생들의 표정에서 수업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다.
특히 나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용을 꽉 채워서 하는 편이라 ‘표정 읽기’가 중요했다. 그런데 그 표정을 볼 수 없게 되면서 수업애 지장이 생겼다. 10년을 했다지만 눈빛만 보고 학생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헤매기를 몇 주, 나는 수업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다면 그 마음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질문을 하고, 답을 유도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특히 중학생 친구들은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본인의 답이 틀리거나, 웃음거리나 되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다음 시간에는 질문을 하고, 답을 유도하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칭찬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그다음 시간에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사적인 이야기를 했다. 내가 주말에는 뭐했고, 요새는 무슨 영화를 보고 있으며, 날씨가 어떻다는 등의 시답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아직도 부족한가 싶어 그다음에는 쉬는 시간 동안 다른 것을 하지 않고 학생들을 주시했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최대한 눈썹을 바쁘게 움직이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아이들이 생겼고, 그렇게 조금씩 ‘표정’이 아닌 ‘대화’로 인한 마음 읽기가 가능해졌다.
이는 비대면 원거리 수업에서 더 효과를 발휘했다. 모니터 앞에서 분할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어색하게 떠들어댔던 때와 달리, 좀 더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간 소통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비대면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줌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해 재밌는 사진을 공유하고, 장난도 치며 온라인 수업에 대한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가끔은 녹화한 영상으로 수업을 대체하는 때도 있었는데, 약간의 편집을 곁들이기 시작했더니, 다음 대면 수업에서 재밌게 봤다며 편집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학생들도 생겼다.
팬데믹은 예상치 못한 위기였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소통이란 단순히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마음을 듣고 교감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팬데믹은 나에게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더 깊은 소통을 배우게 한 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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